[한겨레] 19일의 일이다. 나의 주요 교통수단은 지하철이어서 버스 타는 게 생소했지만 이날은 왠지 버스를 타고 싶었다. 잠실역 근처에서 일을 마치고, 마침 집 근처까지 가는 212번 버스를 탔다.
“어서 오세요. 정말 감~사합니다.” 버스에 올라서자 친절한 버스기사의 인사가 나를 맞았다. 때때로 몇몇 버스기사에게서 듣는 딱딱한 인사와는 사뭇 다르게 아주 다정다감하다는 것을 느꼈지만 그 기사님의 인사를 무심히 넘기고 피곤한 몸을 기대기 위해 뒷좌석 구석에 몸을 묻었다.
집 부근에 도착하기까지 눈이나 부쳐야겠다는 맘으로 고개를 숙이며 자세를 잡는 동안, 그 기사님은 타는 손님에게는 “어서 오세요 감~사합니다”, 내리는 손님에게는 “오늘 하루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편안하고 행복한 시간 보내세요”, 신호 대기 중에 출발하려면 “자~ 출발합니다”, 좌회전 우회전을 할 때면 “자~ 우회전 합니다” “자~ 좌회전 합니다”라고 연신 부드럽고 친절한 ‘멘트’를 날렸다.
서서히 나는 내가 탄 버스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버스는 깨끗했으며 그 기사님은 하얀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깔끔하게 멨고, 마이크를 착용하고 있어서 기사님의 ‘멘트’는 버스 스피커를 통해 또렷하게 들렸다. 편안한 발라드풍의 노래가 카세트를 통해 흘러 나오고 있었다. 그가 음악소리를 잠시 줄이더니 말을 시작한다. “오늘도 버스를 이용해 주신 손님 여러분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자가용을 이용하지 않으시고 이렇게 대중교통을 이용해 주시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릅니다. 오늘 하루도 일하시느라 피곤하지요 정말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집에 가시면 행복하고 좋은 시간 보내세요.” 구구절절 마음에서 우러나는 듯한 말을 듣는 동안 내 피곤함은 눈녹듯이 풀리고 있었다. 눈물이 핑 돌 정도의 진한 감동이 내 가슴 한켠에 자리잡고 소용돌이치면서 나를 정화하는 듯했다. 오르내리는 손님들은 아무렇지 않은 듯 무심해 보였지만 모두가 동감했으리라.
그 기사님은 ‘멘트’가 끝나면 음악소리를 다시 높였는데, 그 모습이 디제이가 있던 예전 음악다방을 연상케 했다. 그가 다시금 음악소리를 줄인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조그만 일이라도 남을 위해 일하고 봉사하는 것이 이 사회를 아름답게 만든다고 말입니다. 오늘 하루도 그렇게 애쓴 손님이 계시다면 정말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그리고 정말 감사합니다. 행복하고 좋은 시간만 있으시길 바랍니다.” 버스에는 승객들은 차지 않았지만 ‘행복’이란 단어로 가득 차 있었다. 승객들은 가슴 한 가득 이 행복을 안고 귀가했으리라.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지나가는 시내버스들의 모습이 새삼, 행복해 보였다.